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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들의 무림 · 04편

비무 —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

동네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 제일 빨리 도는 소문은 대개 셋 중 하나다. 누가 누구와 싸웠다, 누가 누구와 눈이 맞았다, 누가 뒤에서 일을 꾸몄다. 이 게임에서 사람이 결국 지켜보게 되는 것도 그 셋일 거라고 봤다. 그중에서도 싸움은 빠질 수 없다. 배경이 무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를 처음 수십 년 돌려 보고 세어 보니 셋 다 거의 없었다. 이번 편은 첫째, 싸움을 세계에 들인 이야기다. 흑막은 다음 편에서 다룬다.

33년에 비무 네 건

이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싸움의 형태는 비무다. 두 사람이 손을 겨루고, 이기고 지고, 다치거나 죽는다. 규칙은 이미 있었다. 관계가 충분히 나빠지면 비무가 일어난다.

33 세계년을 돌린 로그에서 비무는 4건이었다. 같은 기간 부상은 3만 9,650건이었는데, 그중 비무에서 난 것은 네 건이고 나머지는 전부 일상의 사고였다. 무협 세계에서 사람은 싸워서 다치지 않고 넘어져서 다치고 있었다.

서로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들

규칙이 멀쩡하니 문제는 관계 쪽이었다. 이 세계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 둘 중 하나가 일어난다. 담소를 나누거나, 시비가 붙거나. 교류는 97.2%의 확률로 일어나 우호도를 올리고, 시비는 2.8%의 확률로 일어나 우호도를 내린다.

한 번 만남의 기댓값은 양수로 설정했다. 시비가 한 번 날 동안 교류가 서른여섯 번 일어나 관계가 좀 더 특별한 단계가 되도록 설계했다.

실측도 그대로였다. 1만 5,223쌍의 평생 최저값을 모아 보면 99%가 한 번도 25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반대로 위쪽은 1만 9,063까지 치솟았다. 이 세계 사람들은 서로를 끝없이 좋아하기만 했다. 원한을 품은 사람이 세계 전체에 한 명이었다.

트리거를 하나씩 점검했다.

트리거 무엇을 하나 혼자 넣었을 때
좋아하는 쪽에 천장 위로의 폭주를 막는다 폭주는 잡지만 여전히 모두가 서로를 좋아한다.
시비로 내려가는 우호도 × 3배 관계가 실제로 나빠질 수 있게 한다 비무가 발생한다.
시비가 원한을 낳는다 원한 → 비무의 고리에 불을 붙인다 숫자가 하나도 안 움직였다

"시비가 쌓이면 원한이 생긴다"를 넣었는데 비무도 원한도 한 건도 늘지 않았다. 원한이 생기는 기준까지 관계가 내려가는 쌍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셋을 함께 넣자 문제가 해결됐다. 비무가 4건에서 673건, 원한을 품은 사람이 1명에서 163명이 됐다.

넘어져서 다치던 세계

비무가 673건이 되었는데도 부상 가운데 비무에서 난 것은 0.93%였다. 비무를 더 늘려서 풀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 사고가 한 사람당 1년에 3.2번씩 났고, 그게 전부 화면에 "다쳤다"로 떴다.

"다쳤다" 한 줄에는 누가 왜 다치게 했는지가 없다. 이 게임은 "사건은 반드시 상태를 바꾼다"를 원칙으로 두고 있지만, 상태를 바꾸는 사건이라고 해서 전부 보여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사고를 열 배 줄이자 비무에서 난 부상이 **9.01%**가 됐다. 한 문장에 나란히 적혀 있던 "비무가 네 건"과 "부상이 전부 사고"는 서로 다른 문제였다.

화면에서 싸움이 벌어지기까지

싸움에서 처음으로 연출을 요청했다. 생사가 갈리는 중요한 상황을 뚝딱 처리하기에는 연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승패를 구경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벽으로 둘러싼 변경 마을 남고개를 내려다본 지상계 — 위쪽에 태산검문 외 2(12인)와 현무암자(1인)의 전황 바가 서고, 마을 가운데 교차한 검 표식 아래서 싸움이 벌어진다
지상계의 패싸움 — 전황 바가 양쪽에 남은 힘을 보여준다
연대기에서 같은 싸움을 다시 보는 무대 — 태산검문 외 2가 11인, 현무암자가 1인 남았고 싸우는 사람들 머리 위에 생명력 게이지가 떠 있다
연대기의 재현 무대 — 지나간 싸움을 가까이서 다시 본다

요약

  • 무협 세계에 싸움이 없었다. 만남 한 번의 기댓값이 +2.52라 관계가 나빠질 수 없었고, 원한을 품은 사람이 세계에 한 명이었다.
  • 천장, 더 깊은 시비, 시비가 낳는 원한을 함께 넣자 비무가 4건에서 673건이 됐다. 부상은 비무를 늘려서가 아니라 일상 사고를 줄여서 풀렸다.

부록 — 전투 능력의 공식

비무의 승패는 세 가지 능력으로 정한다. 내공은 오행연환진이, 공격과 회피의 단계는 태극이 정한다.

능력 무엇이 정하나 식
생명력 내공 (내공 + 1) × 40
공격력 공격 단계 (공격 단계 + 1) × 20
회피력 회피 단계 (회피 단계 + 1) × 25
명중률 상대의 회피력 100,000 ÷ (100 + 상대 회피력) ‰
비무에서 죽을 확률 내공 100 ÷ (내공 + 1) ‰
  • 모든 값을 한 칸 밀어서 쓴다. 내공 0은 1로 계산한다. 인구의 80%가 내공 0이라, 처음 식(내공² × 10)에서는 그 80%의 생명력이 0이었다.
  • 내공은 생명력만, 공격 단계와 회피 단계는 공격력과 회피력만 정한다. 내공과 공격 단계, 회피 단계는 미니게임으로 얻게 된다. 내공 1에 공격 5단계인 사람이 내공 3에 공격 1단계인 사람을 84% 확률로 이긴다.
  • 생명력은 1차 함수다. 제곱으로 두면 공격력이 따라오지 못해 고수끼리 서른 합을 겨뤄도 78%가 무승부였다.
  • 죽을 확률은 내공에 반비례한다. 생명력을 정하는 내공으로 비무의 사망 확률도 정했다.
  • 한 판은 최대 30합이고, 화면에서는 한 합이 0.4초다.

다음 편은 셋째 구경인 흑막을 포함해, 사건들을 이야기로 엮는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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